머릿말
안녕하세요. 이번 글을 통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제목을 조금 자극적으로 썼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나온 말로써 만고불변의 법칙은 약자는 강자에게 종속되어야 한다는 말을 담고 있습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아테네 중심의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 사이에 벌어진 전쟁으로 이 전쟁으로부터 그리스는 국력이 약해지고 북쪽 마케도니아 왕국이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1. 전성기를 맞이한 아테네
2.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개
3. 그리스의 몰락
1. 전성기를 맞이한 아테네
페르시아 전쟁이 끝나고 아테네는 페르시아의 재침략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델로스 동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세력을 확장해서 에게 해의 해상권을 장악하기에 이르죠. 더구나 동맹국으로부터 상납금을 받으며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는 소크라테스와 같은 인물이 탄생한 시기이기도 한데요. 아테네의 전성기를 이끈 인물은 페리클레스였습니다. 그는 명망과 판단력을 겸비한 청렴결백한 지도자로 불렸지요. 하지만 아테네의 성장은 기존 스파르타 중심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격적인 전쟁이 발발하기 전에 페리클레스는 스파르타는 육군이 강하고 아테네는 해군이 강하니 스파르타가 공격해오면 성 안으로 들어가 대응하지 않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해안으로 공급되는 물자로 충분했기 때문에 시간을 끌면 스파르타가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인용되는 페리클레스의 연설은 여전히 가슴을 뛰게 만듭니다.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음을 명심하고, 전쟁의 위험 앞에 너무 망설이지 마십시오. 죽음조차 불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란 더 나아질 가망이 전혀 없는 불운한 사람이 아니라, 살아있을 경우 운명이 역전될 수 있고 실패할 경우 가장 잃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자긍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희망을 품고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죽는 것보다, 자신의 비겁함으로 말미암아 굴욕을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운 법입니다.
이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합니다. 사람들이 모이면서 전염병이 퍼진 것입니다. 이 전염병으로 인해 페리클레스마저 죽었습니다. 페리클레스가 죽자 스파르타는 아테네를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합니다.
2.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전개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세 덩어리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스팍테리아 전투
2.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3.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1. 스팍테리아 전투
아테네의 클레온은 페리클레스의 기존 전략을 부정했습니다. 기존 전략은 스파르타는 육군이 강하고 아테네는 해군이 강하니 스파르타가 공격해오면 성 안으로 들어가 대응하지 않는 전략이었습니다. 하지만 클레온은 육지에서 싸워서 스파르타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페리클레스가 통합했던 아테네의 여론이 진영 논리로 나뉘며 클레온과 같은 강경파의 의견이 수면 위로 올라온 것입니다. 이로부터 스팍테리아 전투가 벌어졌고 의외로 아테네가 승리했습니다. 하지만 아테네는 여전히 전염병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스파르타는 명예를 잃으며 두 도시국가는 휴전을 선택합니다.
2. 아테네의 시칠리아 원정
아테네는 사실상 제국이었는데요. 약소국을 약탈하며 전염병으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기 시작합니다. 스파르타와 동맹 관계였던 멜로스 섬을 약탈하는 과정에서 멜로스는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아테네 사절단은 약자가 강자에게 종속되는 것은 역사의 법칙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시칠리아는 지중해의 중심에 위치한 섬으로 시칠리아 도시국가들 사이에서 벌어진 갈등을 명목삼아 아테네는 원정을 떠납니다.
여기서 알키비아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이 원정에 정치가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로 주전파의 젊은 지도자였습니다. 반면 아테네의 사령관 니키아스는 평화를 주장했습니다. 니키아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알키비아데스는 원정을 몰아붙였습니다. 에게 해를 넘어서 지중해를 장악한 아테네 제국을 꿈꾸면서요. 하지만 원정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신상 파괴 용의자로 몰리게 되었습니다. 심상치 않은 음모를 감지한 알키비아데스는 곧장 스파르타로 망명했습니다. 그리고 아테네에 관한 정보를 제공했죠. 결국 아테네는 원정에 실패했습니다.
3.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
시칠리아 원정 실패로 인해 아테네는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알키비아데스의 배신은 물론 원정 과정에서 스파르타에 완전히 패배하며 사령관 니키아스까지 죽었기 때문입니다. 아테네가 해군을 재건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을 벌입니다. 이때 스파르타는 신분제 개혁까지 하면서 병력을 채웠습니다. 아테네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6명의 지휘관이 돌아가면서 지휘를 했지요. 아테네 해군은 또다시 패배했습니다.
3. 그리스의 몰락
아테네는 아이고스포타모이 해전에서 패배하며 더 이상 예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습니다.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다가 결국 사라졌죠. 스파르타는 아테네의 영역을 차지하면서 제국이 되었지만 제대로 운영할 줄 몰랐고 시행착오를 겪는 동안 테베가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며 레욱트라 전투를 끝으로 자멸합니다.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으로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결국 북쪽에서 있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그리스 전체를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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