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스토리텔링
우리는 그럴듯한 이야기에 열광한다. 소설·만화·영화를 보면서 현실보다 더 감정을 이입한다. 현실에 없는 인물들을 현실에 있는 인물들보다 더 관심을 갖고 시간을 투자한다. 누군가는 이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를 지배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욕망을 품고 있지만 한정된 시간을 살아간다.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에서 우리를 지배한다고 볼 수 있다. '과몰입'은 그래서 위험하다. 가톨릭과 불교, 이슬람교와 같이 체계를 갖춘 종교는 명작과 명작을 엮어 만든 현실보다 더욱 그럴듯한 이야기에 다름없다. 우리나라 인구 중 절반은 종교를 믿고 있는데 전혀 이상하지 않은 진실이다. 이들을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가진 특징 중 하나를 강조하기 위해서 예를 들었을 뿐이다. 온몸을 황금으로 입힌 이집트의 왕과 그 옆에서 왕을 위해 봉사하는 노예는 외견상 특별한 차이가 없었다. 단지 그 신분 차이를 인정하는 이야기를 신뢰했다. 위의 그림은 '나루토'에 등장하는 이타치가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위압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현실에서 누군가 렌즈를 끼고 위와 같은 장면을 따라 한다면 어떤 감정이 들까?
2. 역사의 단편
1초씩 시간이 흐른다. 당신에게도 나에게도 이 시간은 공평하다. 우리는 만화나 영화 말고 역사에 잠깐 관심을 주려고 한다. 지구에서 벌어진 '진짜 이야기'는 어떻게 구성될까? 800년가량 타이머를 돌려보자. 중세 유럽은 고대 그리스를 다시 쓰면서 끝났다. 계몽주의로 가톨릭이 가진 권위가 흔들렸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결국 가톨릭은 권위를 잃었다. 사람들은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가톨릭이 권력에서 발을 빼자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가 그 빈자리를 메꿨다. 이 둘은 냉전 시대를 열었다. 결국 자본주의가 승리했고 거침없는 성장을 이루었다. 발전한 기술은 추상적 개념인 '국가'를 위협하고 있다. 가톨릭은 각색한 역사로 중세를 지배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은 각색한 역사로 가톨릭을 무너뜨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은 가톨릭이 무너진 빈자리를 꼼꼼히 각색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반드시 그럴듯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왜냐하면 그럴듯해야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3. 현실
하지만 현실은 그럴듯하지 않은 생각과 행동이 그럴듯한 생각과 행동보다 더 많이 벌어지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미국'이라는 한 국가 안에 마약에 찌든 사람들이 좀비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반면 지구를 떠나려는 꿈으로 부푼 스페이스 X가 있다. 이미 산업화를 끝낸 국가들이 지구를 지킨다는 명목으로 아프리카의 산업화를 막고 있다. 오늘 하루 자본주의가 이룬 성공이 선전되고 있을 때 수십 명의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모순은 또 다른 이야기로 각색될 것이다. 우리가 믿는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그 진실이 진실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 진실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거짓으로 각색할 필요가 있다면 거짓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왜곡이라고 분노해도 소용없다. 우리가 가진 개인의 역사 역시 왜곡되었다. '나'를 위해 왜곡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순덩어리 일상보다 스펙터클한 소설과 영화가 흥미진진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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