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일본 중세
우리는 기억을 망각하곤 한다. 망각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와 다름없다. 이 모순은 상황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예를 들어, 나치의 아우슈비츠가 드리운 그림자는 세대에 걸쳐 고통을 전한다. 이 사건으로부터 인간의 추악한 면과 전쟁의 참혹함을 되새길 수 있다. 이 기억은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예방해 준다는 면에서 '축복'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과 연관된 당사자들은 살아가는 내내 이 기억이 악몽처럼 따라붙을지도 모른다. 일본은 당나라가 송나라로 바뀌면서 중국으로부터 배우기를 그만두었다. 중국이 귀족을 없애고 경제와 사회에 자유주의를 실천할 때 일본의 신분제도는 더욱더 촘촘하게 구성되었다. 이 시기는 일본이 전국을 통일하려는 꿈의 시기가 아닌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 사람들이 속출하는 비극의 시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종 매체에서 '사무라이'는 기억하고 싶은 추억처럼 그려진다. 비판할 수 없다. 우리 역시 독립운동가에 막연한 찬사를 보내지 않는가? 단지, 이 기제를 파악하고 싶은 것이다.
2. 자기 자신을 위한 기억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대체로 현실과 거리가 멀다. 인생은 쇼펜하우어의 표현처럼 고통 아니면 지루함으로 채워져 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재밌고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보릿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굶어 죽는 가족을 바라보면서 가톨릭이 말하는 사후세계만큼 달콤한 눈물은 없을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한 인터뷰에서 자기 자신이 만든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길 추천하지 않았다. 이와 같은 부조리는 전설의 사무라이 '미야모토 무사시'에게도 적용된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쓴 『오륜서』는 병법서로 자신을 단련하고 적을 이기는 실용적인 방법을 설명한다. 60여 회의 실전에서 승리한 무사시는 「슬램덩크」를 그린 이노우에 다케히코의 「배가본드」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만화에 그려진 미야모토 무사시는 상상이 가미된 극히 단면에 보내는 찬사일 뿐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살았던 전국시대는 앞서 말했듯 꿈의 시기가 아닌 비극의 시기였기 때문이다.
3. 역사와 '나'
역사는 현재의 '나'가 예측하는 미래를 위해 명분을 제공한다. 기꺼이 망각하거나 취사선택된 기억을 불러온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전국을 통일하고 칼날을 조선으로 돌렸다. 자유주의의 극단에 닿은 오늘날 국경마저 흐려진다. 이 '사실'에 감정이 사무치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사례'처럼 느껴진다. 그들과 '나'는 특별히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가진 역사는 지리적 조건과 정치·사회가 약간 달랐을 뿐 흐름은 비슷했다. 또한 우리는 아프리카 대륙으로부터 출발한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가? 네안데르탈인과 수많은 동물 종을 멸종시킨 부분에서 시니컬한 동질감마저 느껴진다. 미야자키 하야오와 「배가본드」의 상상에 피가 끓었던 '나'는 역사 앞에서 할 말을 잃는다. 사실은 상상에 비해 재미는커녕 모순만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내일을 위해 어제를 돌아본다. 사무라이가 뽑은 날카로운 칼날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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