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십자군 전쟁: 예루살렘을 탈환하라!

부르넬로 2024. 1. 9.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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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루살렘의 비극

 

  지금으로부터 1,000년 조금 지나지 않은 시점에 유럽과 중동은 '신성로마 제국', '비잔티움 제국', '셀주크 튀르크'로 나뉘어 있었다. 신성로마 제국은 서로마, 비잔티움 제국은 동로마로 유럽이 갈라진 형국이었는데 당시 유럽은 각 지방이 폐쇄적인 봉건제로 '암흑의 시대'라고 불렸다. 반면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튀르크는 중동을 중심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에 신성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은 기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을 탈환하자는 명목상의 명분으로 힘을 합치게 되었다. 실질적 명분은 다음과 같다. ①분리된 동서교회가 기독교를 중심으로 힘을 합침으로써 교황권의 강화, ②귀족층은 새로운 토지의 획득, ③평민층은 부(富)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 ④범죄자는 죄를 사면받을 수 있는 기회···와 같이 전 계층은 각자가 가진 욕망을 뒤섞어 칼날을 갈았던 것이다. 실제 그들은 거침이 없었다. 황의갑에 따르면 당시 교황이었던 "우르반 2세는 설교를 통해 십자군 전쟁 참여를 독려하면서 모세의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이교도에게는 결코 해당되지 않는다고 역설하였다(2010, p. 9)". 따라서 무함마드가 하늘로 올라가 신을 만난 예루살렘, 예수가 고난 끝에 십자가에 못 박힌 예루살렘은 욕망을 해소하기 위한 상징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2. 욕망의 불꽃

 

  십자군 전쟁은 1095년부터 1291년까지 20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제1차 십자군 전쟁으로 기독교 측은 예루살렘 탈환에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이교도라는 이유로 이슬람 측 사람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학살했다. 그들은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마저 돌려 대라는 이상을 가진 기독교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교황이 역설했다는 이유로 잔인한 행위를 합리화할 수 있었을까? 순진한 질문은 욕망의 불꽃으로 사라진다. 1947년 제주 4·3 사건 당시 죽은 10세 미만 어린이 818명은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살해되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가장 경계해야 하는 함정처럼 느껴진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승리한 기독교 측은 어느 정도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슬람 세력은 반격을 시도했고 제2차 십자군 전쟁이 벌어졌지만 이슬람 측이 예루살렘을 재탈환했다. 이후 제3차, 제4차, 제5차, 제6차, 제7차, 제8차 십자군 전쟁 모두 기독교 측이 패배하고 이슬람 측이 최종 승자가 되었다. 하지만 이 전쟁은 한편으로 봉건제로 운영되던 유럽이 동방과 부딪치며 '르네상스'를 일으킨 계기로 평가받는다. 고대 그리스 철학이 재발견된 순간이다. 현재 우리는 어떤 욕망을 태우고 있을까? 그 욕망이 타오른 기원은 무엇일까? 그 욕망은 우리 자신을 위한 욕망이 아닐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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