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근원은 '물'이 아니다.
1. 탈(脫) 탈레스
2,500년 전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탈레스에게 배운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의 근원이 물이 아니라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고대 그리스'가 왜 위대한지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가졌던 공기처럼 자유로운 '사고의 자유'는 나이와 학연·지연·혈연으로 쉽게 주종관계를 형성하는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이상이 무엇인지 제시한다. 전자는 비겁하고 후자는 이상적이다. 이 '사고의 자유'가 가진 영향력은 자유주의가 전 세계로 퍼진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증명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전 세계가 '고대 그리스'를 공유하고 있으므로 실리콘밸리가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만물이 물이 아니라 정해진 실체가 없이 무한히 운동하는 아페이론이 근원이라고 주장했다. 아페이론은 결코 없어지지 않는다. 단지 뜨겁거나 차갑게 변하거나 마르거나 축축해질 뿐이다. 또한 우주론과 진화론을 최초로 제시했다. 당시 지구가 둥글다는 점과 인간이 진화했다는 점은 엄청난 주장에 다름없었다.
2. 인간의 어리석음
아낙시만드로스는 64세에 죽었다. 아낙시만드로스도 끼니를 거르면 배가 고프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는 평범한 인간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인류 전체가 끊임없이 소비하고 있다. 사고의 자유, 비판적 사고, 철학하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꽃을 피우고 있었다. 다만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주저앉거나 후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또한 우생학과 같은 위험한 사고가 만들어낸 홀로코스트를 떠올린다. 겉으로는 이상을 내세운 채 속으로는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날뛰었던 십자군 전쟁은 그 영악함을 드러낸다. 하지만 이 어리석음은 단순히 어리석고 싶어서 어리석어졌다기보다는 그 시대에 지배적인 권력이 설계한 때문일 것이다. 예를 들어, 중세 평범한 농부 중 한 명인 문맹(文盲)이 글을 배운 뒤 처음으로 읽은 책이 "성경"이라면 그에게 성경이 말하는 진리는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십자군 전쟁에 참전해 잔혹한 현실과 이슬람교가 절대악(惡)이 아니라는 사실을 목도하고 그 진리가 진리가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 이미 질병에 시달리는 노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진리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순수하게 성경을 읽었던 그때 그 경이로움을 느끼고 싶을 뿐이다.
3. 함정
이 순간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대의민주주의로 정치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의해 움직인다. 그들이 어떤 말을 내뱉고 행동하느냐에 따라 또 다른 '평범한 농부'의 삶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함정이 주위에 도처해 있는가? 사고의 자유, 비판적 사고, 철학하기는 공기처럼 흘러야 한다. 또한 서로 다름을 존중할 수 있을 때 수많은 함정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